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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숲스토리 시즌1 Vol.16 무엇이 아이들을 에세이스트가 되게 하는가 Part.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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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의숲
작성일
23-01-07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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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아이들을 에세이스트가 되게 하는가. part1 비밀을 이야기하는 공간에서 치유가 인다. 인간은 하나의 세계다. 인간 안에는 휘발되기 쉬운 생각들과 겁 없이 일었다 사라지는 감정들이 산다. 현재 속에서 되새겨지지 않는 기억들은 잊히고, 의미 부여하지 않은 행동과 사건과 사물들은 그저 스쳐서 지나간다. ‘나란 누구일까?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스스로 생각하지 않는다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 삶 속에 익숙한 모든 것들이 그러하겠지만 언어 역시 생활 속에서 무심히 대하게 되는 것 중 하나. 누군가와 마음을 주고받을 수 있다는 것, 관계를 맺을 수 있다는 것, 눈에 보이지 않는 내면을 보게 하고 상대방의 내면을 움직이게 할 수 있다는 것은 언어가 가진 가장 큰 에너지. 짧은 말 한마디가 이루어낼 수 있는 위대한 결과를 생각할 때 언어는 매우 효율적인 인간의, 인간이 가진 에너지이다. 우리는 이 언어를 통해 아이들의 ‘빠롤’을 불러오고 싶다. ‘책상’이라는 낱말이 소통을 위해 약속한 언어적 규칙 ‘랑그’라면, ‘책상은 유년의 그리움이야.’라고 말하는 일은 내 사유의 빛깔이 담긴 개성적 언어 ‘빠롤’이다. ‘봄’이 겨울과 가을 사이에 놓인 계절을 뜻하는 ‘랑그’라면, 봄은 ‘할머니 집 방 아랫목 구들장의 따뜻함이야.’라고 말하는 일은 아이만의 강력한 추억을 표현한 ‘빠롤’이다. 빠롤을 가진 아이의 시간은 흐르지 않고 쌓인다. ‘빠롤’을 가진 아이는 나의 내면을 전달하는 일에 당당하며 다른 아이의 내면에 관심을 기울인다. 인간에 대한 이해란 무엇인가. 인간을 이해하는 일은 내가 누구인가에 대한 자기 인식과 성찰을 통해 우선 이루어져야 하며 자기 이해에 바탕한 인간 인식은 바로 지금 여기에서 ‘내가 인간으로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자각으로 이어진다. 지숲의 에세이는 나의 내면을 사유하고 표현하는 일! 에세이로 드러난 자기 이해는 점차 나와 다른 인간의 내면과 외양의 차이를 다양성으로 이해하고 관용하는 시선으로 확장된다. 갈등이란 무엇인가? 갈등은 왜 나타나는가? 갈등은 어쩌면 우리가 서로 다르기에, 잘 짜인 메커니즘에 의해 기계적으로 작동하는 로봇이 아니기에 일어나는 매우 아름다운 사건이다. 사고력적으로 바라볼 때 내면의 갈등과 바깥의 대립은 나의 성장을 돕는 기회이며 계기이다. 내 안의 무수한 감정을 바로 보는 일이며, 감정의 곁에 쌍으로 머무는 이성적 사고의 힘을 깨닫는 일이다. 지숲의 아이들은 매주 에세이를 쓰고 발표한다. 내가 너에게 나의 내밀한 이야기를 보낸다. 이것은 어쩌면 너의 이야기이며, 인류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무수한 인간 개개인이 겪었을 형제자매의 이야기이다. 그것은 치유의 시간. 내가 강해지는 시간. 혹여 막혔던 에너지가 있다면 다시 흘려보내는 시간! 지숲의 아이들은 에세이를 통해 나를 세운다. 오늘도 나는 하늘을 바라보며 생각한다. 하늘에 있는 사람, 나를 바라보고 있는 사람, 나랑 친했던 사람, 내가 걸어온 길을 생각한다. 오늘은 내가 아직도 신고 있는 전족에 대해 이야기 하고 싶다. 나는 엄마, 아빠가 둘 다 막내이고, 위로 형제가 정말 많은 그런 집에서 태어났다. 엄마, 아빠는 결혼도 늦게 하시고, 나도 늦게 낳으셔서 나는 사촌 언니, 오빠들에 비해 많이 어리다. 이미 다 대학교에 들어가고, 직장을 가진 언니, 오빠도 있으며, 결혼한 언니, 오빠들이 있다. 언니, 오빠들한테는 내가 마냥 작고, 천진난만하고, 아무 걱정이 없어 보일 꼬맹이일 뿐이다. 하지만 그런 나에게도 정말 힘든 일들이 있었다. 아니 지금도 그걸 겪고 있다. 이 이야기는 남에게는 아주 작은 고민, 아니 고민거리도 아닐 수도 있지만 나에게는 아주 큰 아픔을 주었던 일이다. 나는 외할머니 얼굴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외할머니는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돌아가셨고, 사진으로만 봤을 뿐이다. 하지만 그것은 별로 나에게 죽음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알려주는 큰 계기는 아니었다. 그냥 단지 ‘그렇구나’ 하고 넘어갈 일이었다. 내가 자라면서 명절에는 꼭 한 번씩 마주치는 그 얼굴들이 있다. 바로 할아버지, 할머니이다. 꼭 1년에 한 번씩 만나는 그 얼굴은 점점 낯이 익어가고, 조금씩, 한 발짝 가까워지고 있었다. 하지만 나이는 정말 사람을 속일 수는 없는 것일까? 초등학교 1학년 인가 2학년 때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아빠도, 엄마도 막내인지라 그것은 당연히 내가 어렸을 때 겪어야 할 시련이었던 것일까? 그때 언니랑 제일 서럽게 울었던 것 같다. 그때 죽음이라는 것을 처음 깨달았다. 그 뒤로 나는 엄마, 아빠가 제시간에서 조금이라도 늦으면 눈물이 흘렀고, 엄마, 아빠가 나를 달래느라 애쓰던 기억이 난다. 정말 엄마, 아빠가 어떤 일이 날지 모르고, 너무 어렸기에 너무 서러워서 울었다. 하지만 정서불안인지 모를 이러한 증상이 더 심할 때는 따로 있었다. 3학년쯤, 방과 후를 같이 하던 언니가 있었다. 그 언니는 나보다 2살 더 많았다. 그 언니랑 친해지는 데는 꽤 오래 걸렸지만 그 언니랑 바느질을 같이 하던 그때가 생각난다. 언니가 못하는 것을 내가 도와주던 것도 생각난다. 하지만 여름방학 때(?) 그 언니의 아빠가 졸음운전을 하는 바람에 난 사고가 그 언니를 떠나게 만들었다. 지금 이 세상에 없는 그 언니가 난 아직도 생각이 나지만 그 언니를 만나볼 수 없다는 것이 아직까지도 슬프다. 그 언니는 나를 좋아했는지도 모르지만 난 그 언니를 정말 좋아했다. 그때부터였다. 내가 입술을 뜯기 시작한 지, 내가 엄마, 아빠한테 어떻게 해서든 꼭 전화 통화를 하기 시작한 지. 조금이라도 늦으면 불안해 미칠 것만 같았다. 내 생에 가장 불안했던 순간들이다. 그 일을 차츰 가슴 한구석에 몰아넣고 있을 그때, 5학년 때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난 할아버지가 병원에서 앉아 있는 모습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치매를 앓아서 나를 못 알아보시는 할아버지가 별로 좋지 않았다. 그런데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니 이제야 그 빈자리를 알게 되었다. 내가 할아버지와의 이별을 가장 슬프게 여기는 것은 할아버지가 중환자실에 누워있던 그 모습이, 할아버지가 의식은 없으셔도 귀는 들리신다는 그 간호사님의 말씀이 나를 무너지게 만들었다. 폴더 폰이 있을 때 엄마가 1분이라도 늦으면 전화했고, 엄마의 목소리를 들어야지만 안심이 되었다. 엄마가 주차장에 들어왔다고 떠도 전화는 필수였다. 하지만 요즘은 많이 나아졌다. 엄마가 항상 늦게 올 때면 전화를 하긴 하지만 엄청 늦지 않는 이상 전화를 삼가기로 했다. 엄마가 운전하다가 전화를 받으면 위험할 수도 있으니까. 난 항상 아직도 엄마, 아빠에게 그냥 평생 애기이고 싶다. 그냥 사랑스럽고, 착한 아이이면 좋겠다. 하지만 요즘 들어 엄마한테 대드는 모습을 한 나도 있지만 그럴 때마다 후회하고 다시는 하지 말아야지 생각하며 나를 조금씩 고쳐가고 있다. 부모님이 없으면 엔진 없는 자동차일 뿐이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지금은 나아지긴 했지만 TV를 보고 있다가도 나도 모르게 귤껍질이 가루가 될 때까지 찢고 또 찢는다. 엄마가 하지 말라고 하면 그만둘 수는 있다. 하지만 그게 또 언제 시작될지 모른다. 난 이 세상에 있는 죽음이라는 당연한 이치가 정말 싫다. 헤어짐이라는 단어가 정말 싫고, 이별이라는 단어도 모조리 내가 다 싫어하는 단어이다. 이런 이유들로 내가 정신적으로 불안을 겪고 있는 것이 남한테는 정말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일 수도 있지만 나에게는 너무 다르게 느껴진다. 아직도 걱정을 한다. 부모님이 내 곁에 없으면.. 이라는 걱정. 엄마에게는 이런 고민을 털어놓았지만 엄마는 그냥 그런 생각을 하지 말란 말만 되풀이했다. 엄마도, 아빠도, 언니도, 어떤 사람도 나의 아픔을 정확히 이해하는 사람은 없다. 난 이 이야기를 누구한테도 하기 싫었다. 내가 마냥 행복하고, 활발하니까 약함을 보이기 싫었다. 나의 약점을 누구에게도 보여주기 싫었다. 나는 그냥 아픔 없는 나이길 바랬다. 그래서인지 내가 이야기를 쓰면서 끝 이야기가 죽음으로 끝나는 것도 이런 나의 아픔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었을까? 생각도 든다. 지금도 많이 불안한 ‘나’이지만, 그 불안을 아직도 껴안고 있는 ‘나’이지만, 전족을 신고 있는 ‘나’이지만 나를 위해 이겨내고 있다. 하지만 나 혼자서는 불구덩이를 빠져나오기에는 역부족이다. 누구 나 좀 꺼내줄 사람? - 임00(중 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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