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숲스토리 시즌2 Vol.22 운명처럼 소나기가 내린다 소나기는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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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 지혜의숲
- 작성일
- 23-07-21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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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처럼 소나기가 내린다. 소나기는 아프다. 소년, 소녀를 만나다 “선생님! 그런데 이름이 없다는 공통점 말고 소년이랑 소녀는 다른 점도 꽤 있어요. 차원을 정해 말해보자면 우선 소녀와 소년은 오래 살았던 곳이 달라요.” “맞아! 둘은 성격도 외모도 엄청 다르더라. 꼭 형하고 나 같아” “하필 엄청 다른 두 사람을 만나게 한 걸까? 시골 소녀와 소년, 도시 소녀와 소년으로 정했다면 관심사가 비슷할 테고 그럼 말도 더 잘 통했을 텐데! 작가는 심술쟁이야.”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처럼 왼손을 턱에 괴고 반문하는 내게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른다는 눈흘김을 날리는 아이들. “에이 그러면 한 개도 궁금하지 않잖아요, 달라야 알아가는 재미가 있죠!” “것도 있지만 작가는 훨씬 더 중요한 얘기를 하는 것 같아.” 주아가 말한다. “시골 아이나 도시 아이나 사랑을 느끼는 마음은 같다는 걸 전하려는 게 아닐까?” 우워! 아이들의 이구동성. “선생님 또 있어요. 시골 소년이든 도시 소녀든 사랑에 있어서는 모두 평등하다는 걸 알려주려는 것 같아요.” 이전에도 ‘우워!’ 할 줄 알았더니 뜻밖에 조용하다. 왁자지껄 생각을 생산하는 일이 세상에서 가장 유쾌한 이 아이들의 짧은 침묵은 생각의 정지 그리고 짧은 탄식. 어떤 느낌과 사유가 가슴에 한순간 깊이 박힐 때, 잠깐 숨을 멈추는 영원 같은 이 찰나가 나는 좋다. 굳어있던 평등이라는 개념어가 말랑말랑 살아나 호흡되는 순간, 아이들의 정체성에 새겨지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정서가 따르지 않는 배움은 없다. 배움에 이르는 길에서 진실로 모든 것은 감성에서 출발한다. ‘소년은 과묵한 데 비해 소녀는 수다쟁이야.’ 남자 아이들 왈 ‘소년이 과묵하다고? 소심한 거지. 소녀는 쾌활한 거고.’ 반박 ‘소년이 소심하다면 어떻게 엄청나게 불은 도랑을 소녀를 업고 건너냐? 소녀 주려고 덕쇠 할아버지네 호두나무에 올라가 호두도 훔쳤는데. 그 정직한 애가!!’ 재반박. ‘좋아. 소년은 용맹하고 신중하고 책임감도 강하다고 쳐. 소녀는 그런 소년을 알아봤으니 한 수 위지. 영리하고 솔직하고 꾸밈없고 자신감도 넘쳐.’ 타협안 가결 소년의 어떤 태도에서 정직성(?)을 느꼈는지 의심스러우나 소년의 용맹한 행동에 공감한 네 명의 소녀들은 더 이상 따지지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소나기 속의 소년은 누구보다 순정하다. 소녀가 뵈지 않던 날, 소녀가 앉았던 징검다리 한가운데 앉아 물속에 비친 까만 제 얼굴을 몇 번이고 손으로 움키던 소년은 사랑에 빠진 우리 모두의 모습이다. 사랑할 때의 나는 너에 비해 한없이 작다. 내 마음에 비친 너는 그토록 아름답고 환하게 빛나는데, 내게 비춰본 나, 나의 마음속에서 나를 향해 울려오는 메아리는 항상 바보, 바보, 바보. 그럼에도 사랑하지 않을 수 없기에 소년은 소녀를 따라나선다. 소나기 먹구름 뭉게뭉게 들이닥치는 미래로. 저 먼 산, 등성이로. 징검다리 그리고 소나기 사랑은 징검다리에서 예정되어 있었다. 왜 소녀와 소녀는 곧게 뻗은 신작로 가로지르는 든든한 다리가 아닌 징검다리에서 만났을까. 징검다리는 아슬하다. 두 사람이 함께 건너지 못하여, 한 사람이 앞서면 한 사람은 뒤에 서야 한다. 깡총깡총 서두르다간 아뿔싸, 필경 한 다리 삐긋 물에 빠지고 만다. 징검다리는 드문드문 끊긴다. 비라도 세게 내리면 돌덩이는 물에 잠겨 아예 건널 수 없게 사라져 버리기도 한다. 소녀와 소년의 사랑도 그러하여 소나기 내린 날 소년의 옷에서 전해진 얼룩 배인 소녀의 스웨터를 남기고 둘의 사랑은 죽음이라는 물속에 잠겼다. 아이들은 징검다리가 두 사람의 사랑이라고, 겉으론 보이지 않아도 존재하는 물속의 징검다리처럼 영원하리라 추측했다. 끊인 듯 이어지는 징검다리는 생과 사, 이별과 만남 사이에 놓인 우리들의 사랑. 어디 소녀와 소년이 만난 징검다리뿐이랴. 역사와 설화 속에는 존재가 건너야했던 다리들이 무수히 등장했으니 정몽주가 나귀 거꾸로 타고 건넜다는 선죽교는 고려의 충신으로 남고자 했던 포은의 절개이자 지조일 것이며 칠월칠석의 밤을 기다리던 견우와 직녀에게 까마귀가 만들던 하늘다리는 재회의 예감이자 기쁨이었을 터. 그러므로 다리는 연결이다. 우연처럼 스치는 모든 이들은 다리에서 만나고 다리에 새긴 추억을 지나 또 다른 만남을 향해 간다. 그 끝에는 소년이 주머니 속에서 만지작거리던 조약돌이 있고 소녀가 입은 채로 묻어달라던 분홍 스웨터가 있다. “선생님, 비가 내리지 않았으면 소녀는 안 죽었어요?” “선생님도 모르겠구나. 다만 시간아! 멈춰라 너 아름답도다 외칠 만큼 무엇과도 바꾸고 싶지 않은 추억을 소녀가 갖게 된 건 알겠다.” 엮은 수숫단 사이로, 소녀의 머리에 소년이 씌워준 화환 틈으로 새어들던 비. 운명처럼 소나기가 내린다. 소나기는 아프다. 갑자기 쏟아져 관성에 젖었던 우리를 놀래 키며 순식간에 온 몸을 적신다. 안락한 방안에 깃들어 바라보는 비의 풍경은 호쾌하나 밖에서 온몸으로 온 힘으로 비를 맞는 사람은 온몸이 온 마음이 아프다. 예고도 없이 다가와 나를 흔들어놓고 바꾸어버린 소나기 같은 만남. 내게는 너희와의 모든 순간이 그러했단다. 아이들에게도 그런 시간과 존재가 있다. 언젠가 졸업할 지숲이, 문득 인사 나누게 된 소년과 소녀와의 인연이, 시끌벅적 허공으로 메아리치며 섞이던 어느 봄의 웃음과 작은 탄식이. Text. 소나기 변덕쟁이 소나기는 정말 변덕쟁이다. 자기가 오고 싶을 때만 땅에 온다. 또 소나기는 초대도 안 받은 채 갑자기 내려버린다. 언제는 생명을 만든다고 뽐내고, 또 언제는 자기가 그림 같다고 흥청망청 잘난 척을 한다. 하지만 그건 외면적이고 소나기의 내면은 또 다르다. 오늘 주제가 소나기 같은 만남인데 소나기 같은 만남은 왜 존재할까? 바로 앞에서 소개했던 이유들 때문이다. 소나기 같은 만남은 예고도 없이 갑자기 찾아온다. 마음을 움직이고 더더욱 세게 흔들어 나를 바꾸어버린 만남이다. 나에게도 소나기 같은 만남은 있다. 하지만 지금 내가 말하려는 만남은 좀 특별한 만남이다. 이 만남은 나의 만남 중에 제일 오래된 만남이다. 그 만남은 바로 나와 나의 만남이다. 내가 나를 처음 만난 건 내가 세상에 처음 나올 때이고, 내가 나를 처음 안건 나의 생각의 폭이 나만큼 넓어졌을 때이다. 나는 나와 만났고, 나를 잘 알지만, 다른 사람들도 자기를 만나고 알아야 세상으로 나가고, 소나기 같은 만남을 할 수 있다. 사실 내가 나를 만난 것도 소나기 같은 만남이다. 앞에서 내가 나만큼 생각의 폭이 넓어져야 나를 만날 수 있다고 했는데, 생각의 폭이 넓어지는 그 순간 순간도 갑자기 오기 때문이다. 소년과 소녀가 만나서 조약돌, 분홍 스웨터를 남겼다면, 나는 나를 만나서 나의 지식과 성향, 나의 생각 등을 사람들에게 남기고 전파했다. 내가 나를 만나서인지 친구들은 나의 지식과 생각, 성향 등을 안다. 만남은 누구나 한다. 만남은 무엇을 남기는 계기가 된다. 특히 소나기 같은 만남은 그 만남이 소나기 같은 만남이라는 흔적도 남겨준다. 나는 나를 만났지만 앞으로도 이를 계기로 많은 사람과 끈을 이을 거고, 소나기 같은 만남 아닌 나와의 만남을 이어갈 것이다. 소나기, 소나기, 소나기. - 김주한 Text. 소나기 연준이, 연준이가 보고 싶다. 연준이는 내가 전학오기 전 같이 친하게 지냈던 친구이다. 연준이는 1학년 때 안 친구여서, 많이 친하게 지내지는 않았었다. 하지만, 총싸움도 같이 하고 장난도 치고 재미있게 놀았다. 어느 날 내가 광주로 이사를 오게 되기 전까지는. 나는 연준이와 작별 인사를 하고 광주에 왔다. 광주에서 살아봐서 친구들을 조금 알긴 했지만, 다시 친구들이랑 친하게 지낼 수 있을지 걱정부터 되었다. 천안을 떠나고 나니 천안에서 사귀었던 친구들이 다 소나기 같다. 소나기는 나에게 기쁨을 주었지만, 결국 금방 사라져버렸다. 광주에서 적응하는 건 힘들었다. 그나마 그 전에 알았던 친구들 덕분에 빨리 적응할 수 있었지만, 학교에서 친구들을 사귀는 것은 쉽지 않았다. 학교에 입학하자, 아무도 나한테 관심을 갖지 않고 자기가 하고 싶은 것만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주형이라는 아이와 내가 큰 싸움을 벌였다. 내가 이겼지만, 선생님께서 나보고 사과를 하라고 하셨다. 주형이도 어쩔 수 없이 나에게 사과를 하고 나도 사과를 했다. 4학년이 되어 난 박성우라는 친구를 사귀었다. 성우는 운동도 잘하고. 공부도 잘하고, 악기도 잘해서 나랑 잘 맞았다. 그래서 친한 친구가 되었다. 이제 곧 5학년이 된다. 3학년 때 싸웠던 일, 놀던 일도 다 소나기 같다. 한 만남이 끝나면 다른 만남이 이어진다. 또 한 만남이 다른 만남을 이어주기도 한다. 인생은 소나기처럼 짧지만 우정은 가래떡처럼 길게, 모든 순간 모든 사람과 친하게 지내고 싶다. - 남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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