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숲스토리 시즌2 Vol.29 Let it be, Let it be, Let it 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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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 지혜의숲
- 작성일
- 24-01-12 17:38
본문
Let it be, Let it be, Let it be--=.
무거운 책가방을 메고 학교로, 학원으로 시곗바늘처럼 돌고 있는 아이들이지만 이 아이들도 가슴이 들끓어 오르는 십대이다. 우리가 그것을 자주 잊고 있는 것은 아닐까? 서양에는 로미오와 줄리엣이 있다면 우리나라에는 홍길동, 심청, 성춘향 등 고전 속 유명인들이 있다. 그들의 삶은 얼마나 극적이었는가? 사회의 모순에 맞서 집을 나가고, 아버지를 위해 몸을 던지고, 사랑을 위해 죽음을 각오했던 그 열렬한 삶의 나이는 몇 살이었을까? 아이들에게 물으면 자기들보다 한참은 어른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웬걸? 그들의 나이는 고작 열다섯 살 언저리였다. 우리나라 현대사의 첫 혁명이었던 4.19혁명의 주역들도 십대들이었고, 전태일도 십대에 노동현실에 눈을 떴다. 그들은 다 무엇엔가 빠져 있었고, 무엇엔가 신념을 가졌고, 무엇엔가 모든 걸 다 걸었다. 그만큼 뜨거웠기에 두려움도, 물러섬도 없었을 것이다. 몰입의 눈, 열정의 눈, 로미오의 눈을 가진 아이들. 나는 부럽다. 하지만 아이들은 이런 나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지켜야할 것, 따져야할 것, 생각해야할 것이 많은 이 나이든 선생의 삶은 그래서 더이상 생기롭지도, 빛나지도 않는다는 것을 말이다.
“쌤, 사랑이 죄인가요?” 아이들이 심각하게 질문한다. 젊은 남녀가 사랑을 하는 게 뭐 그리 대수라고 온 집안이 나서서 이렇게 반대를 하느냐는 것이다. 아마 이 이야기 속 비극의 원인이 가문의 반대에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하긴 요즘 시대의 사고방식으로는 좀 대단한 반대이다. 우리는 자유연애 시대에 살고 있으니까. 덕분에 우리가 지금 고전 작품을 만나고 있다는 점을 상기하게 된다. 문학은 시대와 사회를 반영하고 시대의 다름을 느끼는 것이 또 고전을 읽는 묘미이니까.
그렇고 보니 작가 셰익스피어는 영국 사람인데 왜 이 작품의 배경은 이탈리아의 도시 베로나일까? 예리한 질문이 파고들 지점이다. 고개를 갸우뚱하는 아이들에게 힌트를 던져준다. 르네상스!
“아하,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르네상스가 시작되었어요. 그리고 셰익스피어는 르네상 스를 대표하는 작가잖아요.”
역시 세계문명사 수업을 앞서 진행한 보람이 있다. 배경지식이 어떻게 아이들의 사유를 더 풍요롭게 만들어갈 수 있는지 느끼는 순간이다. 르네상스가 사회 시험에만 나오는 것이 아니다. 이렇게 가문의 반대를 무릅쓴 청춘의 사랑을 해명하는 데도 도움이 되잖는가.
16세기 유럽에서 로미오와 줄리엣 이야기는 꽤나 충격적이고 신선한 바람을 일으켰을 것이다. 중세적 결혼관은 지금 우리가 가진 근대적 결혼관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 그것은 우리의 관점으로는 도저히 이해하기 힘든 일이지만 건국을 위해 스물 아홉번이나 결혼을 했던 고려의 왕건 이야기도 있듯이 근대 이전의 ‘결혼’이라는 말은 사전적 의미가 지금과 달랐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남녀간의 사랑의 결합’이 아닌 ‘가문과 권력의 결합’으로서 결혼, 그것이 결혼에 대한 그 시대인들의 생각이었다. 그러던 시대에 새로운 유행을 선도하는 이들이 생겼으니 이탈리아의 상업 도시들을 중심으로 피어나는 자유로운 문화 예술의 기운과 더불어 기존 질서를 깨뜨리고 도발하는 젊은이들의 이탈이 그것이다. 자유연애를 선언한 로미오와 줄리엣은 르네상스 시대의 신세대이고 신인류라고 볼 수 있겠다. 셰익스피어가 근엄한 영국을 배경으로 그런 이야기를 그려낼 수 있었을까? 로미오와 줄리엣은 상인 귀족 가문의 자제들이다. 이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는 베로나의 자유로운 공기를 타고 흘러야 제격이다.
아이들은 두 젊은이의 비극을 가문의 반대에서 찾는 모양이지만 나는 조금 다른 방향으로 이끌어보기로 한다.
“심리학에는 ‘로미오와 줄리엣 효과’라는 말이 있어. ‘칼리굴라 효과’라고도 하지. 무 슨 뜻일까?” (고전 하나를 읽었을 뿐인데 심리학 용어까지 덤으로 알게 된다.)
“아, 알겠다. 주변에서 반대하면 더 하고 싶어지는 심리 아니에요?”
두 연인의 사랑은 그들을 둘러싼 상황이 나빠질수록, 절망이 짙어질수록 더 강렬해졌다. 청개구리 같지만 맞는 말이다. 아이들은 무척 공감한다. 엄마가 그만 자라고 하면 더 자고 싶단다. 반대도 성립된다. 공부하려고 마음 먹었는데 엄마가 공부하라고 하면 갑자기 하기 싫어진다나?
사람의 마음은 마법과 같은 힘이 있는 것 같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 간절히 원하는 일을 할 때 본래 가진 능력치를 훌쩍 뛰어넘어 버리는 초능력을 발휘한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비극의 진짜 원인은 죽음의 공포를 뛰어넘게 하는 이 간절한 마음에 있다. 사랑에 빠진다는 것, 그래서 사로잡히고 취해버리는 것은 이렇게 무서운 것이다. 그들이 조금만 더 분별력을 가졌더라면, 조금만 더 가슴이 차가웠더라면 죽음을 행하는 그 순간 어찌 주저함이 없었겠는가? 눈이 해방된 사람에게 눈이 사로잡힌 사람은 어리석고 무모하게 보일 뿐이다.
하지만 돌이켜 보면 그 무모함과 어리석음이 세상을 움직여 왔다. 갈릴레오 갈릴레이, 뉴턴, 아인슈타인은 자연과 우주에 대한 사로잡힘으로 평생을 보냈다. 소크라테스, 공자, 부처, 예수의 철학적 질문은 어떠했는가? 고흐와 베토벤의 예술에 대한 열정은 어떠했는가? 외면과 고난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게 했던 그 마음의 불꽃은 무엇이었겠는가? 열정과 몰입, 바로 로미오와 줄리엣의 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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