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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숲스토리 시즌2 Vol.28 렛잇비(Let it be), 그대로 두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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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혜의숲
작성일
23-12-05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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렛잇비(Let it be), 그대로 두어라!!! 이제 본격적인 수업에 시작할 시간, 나는 조용히 시를 낭송한다. 아이들이 욕심내더라도 언제나 수업을 여는 시 낭송은 내 몫이다. 시를 좋아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처음 우리가 중등 교재 작업을 할 때 맨 앞장에 그날의 수업 주제를 암시하는 시를 제시하기로 하고 심혈을 기울여 시를 골랐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교탁을 탁탁 치며 “오늘의 주제는~” 하는 것보다 훨씬 감미로운 수업의 도입인 셈이다. 오늘은 시와 희곡의 만남이다. 취하세요 보들레르 항상 취해야만 해요 그게 전부지요 그게 유일한 문제이지요 여러분들의 어깨를 부러뜨리고 땅 쪽으로 여러분들을 눕히는 시간이라는 무서운 짐을 느끼지 않으려면 계속해서 취하셔야 해요 하지만 무엇으로 그러나요? 술로, 시로, 덕목으로 마음대로 하세요 차지만 취하세요 때때로 궁전의 계단에서, 도랑 속의 푸른 풀 위에서 여러분들 밤의 우울한 고독 속에서 깨어났을 때 술기가 이미 가셨거나 없어졌으면 바람에게, 물결에게, 별에게, 새에게, 시계에게 도망하는 것들에게, 신음하는 것들에게 굴러가는 것들에게, 노래하는 것들에게 말하는 것들에게, 물어보세요 지금이 몇 시냐고 물어 보세요 그러면 바람이, 물결이, 별이, 새가, 시계가 대답해 줄 거예요 취할 시간입니다 시간에 학대받는 노예가 되지 않으려거든 계속 취하십시오! 술에, 시에, 혹은 덕목에, 마음대로요 시 낭송이 끝나면 아이들은 이미 취해있다. 나의 목소리에 취했으면 좋으련만 그것은 아니고 알쏭달쏭한 시의 말들에 제대로 취해있는 것이다. 나는 마지막 연을 힘주어 다시 낭송한다. ‘취할 시간입니다. 시간에 학대받는 노예가 되지 않으려거든 계속 취하십시오! 술에, 시에, 혹은 덕목에, 마음대로요.’ 취함의 비밀은 무엇일까? 아이들과 함께 ‘취하다’라는 서술어에 어울리는 말들을 다 찾아보기로 한다. 술에 취하다. 음악에 취하다. 향기에 취하다. 잠에 취하다. 게임에 취하다. 분위기에 취하다. 맛에 취하다. 기분에 취하다. 성공에 취하다. 와, 깜짝 놀란다. 우리는 이렇게 많은 것들에 취할 수 있구나. 이쯤 되면 술을 마셔본 적이 없는 아이들도 취함이 무엇인지 느끼는 것 같다. 게임에 취해있을 때 아무리 맛있는 간식으로 유혹해도 소용없다. 즐거운 놀이에 빠져 있으면 시간의 지루함 따위는 느낄 겨를이 없다. 여전히 취할 무언가가 있는 사람은 늙음의 서러움도 찾아오지 않는다. 뭔가에 취한다는 것, 그것은 내가 없어져 버린 상태, 대상에 빠져 버린 상태, 심지어는 대상과 내가 하나가 되어버리는 상태, 물아일체의 상태, 그리하여 다른 것은 보이지 않는, 분별력과 이성적 사고가 불가능한 상태이다. 이건 정말 곤란한 일인데? 자, 그럼 우리의 주인공 로미오와 줄리엣은 무엇에 취해버렸는지 보기로 한다. 워낙 유명한 이야기이다 보니 자칫 소설로 오해하기 쉽지만 이 작품은 희곡이다. 셰익스피어가 활동했던 16세기 유럽은 바야흐로 연극의 시대였다. 르네상스의 꽃이 활짝 피어난 것이다. 수천 개가 넘는 작품들 중 살아남아 시간을 건너 우리의 손에 오롯이 전해진 이 작품을 우리도 연극으로 만나보면 좋으련만 당장 공연을 찾아 나설 수 없으니 한 대목이라도 연극처럼 재현해보기로 한다. 그렇다면 배역부터 정해야지. 물론 엄청난 반발과 저항이 예고되는 일이다. 하지만 꿋꿋하게, 그리고 살짝 짓궂게 로미오는 여자 친구에게, 줄리엣은 남자 친구에게 맡긴다. 끝나고 최고의 연기상을 발표하겠다는 약속과 함께. 배역이 정해지면 연기의 몰입을 위해 그들의 아름다움을 상상해보기로 한다. 사람들에게 <로미오와 줄리엣>은 영화의 이미지로 더 널리 알려져 있다. 나이가 지긋한 이들에게는 올리비아 핫세의 작품이, 비교적 젊은 사람들에게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작품이 떠오를 것이다. 하지만 요즘의 아이들은 두 작품 다 생소하다. 나는 누가 뭐래도 줄리엣은 올리비아 핫세가 진리라는 입장이기에 유튜브에서 고전 중에 고전이 된 영상을 찾아 화면에 띄운다. 그 유명한 OST ‘A Time For Us’의 아름다운 선율이 흐르는 가운데 베로나의 두 젊은이 로미오와 줄리엣이 처음으로 서로를 알아보는 장면이다. 청순가련한 줄리엣의 모습에 아이들은 로미오처럼 입이 딱 벌어진다. 첫사랑의 얼굴이다. 지금은 일흔이 넘은 할머니라는 것은 절대 말하지 못하겠다. 쭈볏거리면서도 자신의 배역에 맞춰 대사를 읽는다. 어떤 아이는 말 그대로 로봇연기를 하지만 제법 연기 투혼을 발휘하는 아이도 있다. 그런데 이내 중단된다. 여기저기에서 쿡쿡 웃음소리가 터져 나온다. 너무 오글거린다는 것이다. “아~ 쌤, 이게 뭐예요.” 가엾은 로미오와 줄리엣의 볼멘소리이다. 하지만 애들아, 알고 있니? 셰익스피어는 희곡작가이기 전에 시인이었단다. ‘네 어디 그대를 여름날에 견줘 볼까? 그대가 더 아름답고 더 온화하다네.’(셰익스피어 소네트 18 중에서) 여름보다 더 아름다운 나의 사춘기들을 달래며 연극을 계속 이어가 본다. 벤볼리어 내 말 들어, 그 여자는 잊어버려. 로미오 그러자면 생각하는 법부터 잊어야 할 텐데 그건 어떻게 하는 건가? 밴볼리오 자네 눈을 해방시켜 다른 여인들의 미모를 살펴보는 거지. <로미오와 줄리엣 /달궁> 1막 2장 중 로미오 아, 저토록 밝게 타오르는 여인이 있다니, 횃불이 울고 가겠구나! 마치 흑인 여자의 귀에 달린 값진 보석처럼 밤의 빰에 달려 있는 듯하구나. 쓰이기에는 너무 값지고, 쓰이지 않기에도 너무 아깝다. 또래들과 함께 있는 저 처녀는 까마귀 떼와 노니는 눈처럼 새하얀 비둘기로구나. 춤이 일부 끝났으니 여인이 선 자리를 보고 그곳으로 가서 처녀의 손을 잡아 나의 무례한 손을 축복해야겠다. 내 가슴이 여태 진정 사랑한 적 있던가? 부인하라, 나의 눈이여, 나는 오늘 밤에야 비로소 진정한 아름다움을 보았느니라. <로미오와 줄리엣 /달궁> 1막 5장 중 줄리엣 그대의 이름만이 나의 원수일 뿐. 그대가 몬타규든 아니든, 그대는 변함없이 그대입니다. 몬타규가 별 것입니까? 몬타균느 손도 발도 아니고 팔도 얼굴도 아니며 몸 어디에 붙어 있는 것도 아닙니다. 아, 다른 이름을 가지세요! 이름이 별것인가요? 우리가 장미라 부르는 것은 어떤 이름으로 불리든 그 향기에는 변함이 없지 않아요? 로미오 역시 로미오라고 불리지 않아도 간직하고 있는 미덕은 어디 가는 것이 아니잖아요. 로미오, 그대 이름을 버리세요. 그리고 그대와 아무 상관없는 그대 이름 대신 내 전부를 가져가세요. <로미오와 줄리엣 /달궁> 2막 2장 중 로미오는 참 웃긴 녀석이다. 줄리엣을 만나기 전에 이미 사랑하는 여자가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캐플렛가의 무도회에서 줄리엣을 보자마자 ‘내 가슴이 여태 진정 사랑한 적 있던가? 부인하라, 나의 눈이여’라는 바람둥이 멘트를 날리고 있다. 여자아이들이 성토대회를 벌인다. 하지만 줄리엣도 만만치 않지. 로미오에게 ‘내 전부를 가져가세요’라고 한 치의 주저함도 없이 화답하고 있지 않는가. 두 사람이 특별히 되바라진 것일까, 아니면 이 시대의 젊은이들이 조숙한 것일까? 놀랍게도 그들의 나이는 14살, 16살이다. 지금 지숲 수업을 함께하고 있는 나의 학생들의 나이! 요즘 아이들은 어떨까? 나의 학생들 중 몇몇은 초등학교 시절부터 간간이 남친, 여친을 사귀고 100일 의식도 치루고, 또 곧잘 헤어지는 연애대장들이다. 다는 아니지만 자기들끼리는 그것이 유행인 듯했다. 그 아이들은 어떻게 고백을 할까? 뭐 성을 버리고 가문을 버리라는 협박은 하지 않았겠지만,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당장에 달려가 결혼식을 치르지는 않겠지만 사랑에 빠진 순간 마음이 어찌 다르겠는가? 사랑에 빠져 버린 그 눈을 어떻게 가릴 수 있겠는가? 벤블리오의 대사가 참 의미심장하다. 눈을 해방시켜라. 하지만 로미오는 끝내 자신의 눈에 자유를 주지 못했다. 기꺼이 사로잡힘의 눈을 선택했다. 그것이 가슴을 뛰게 하고 그것이 사는 것을 신나게 만드는 일이기 때문이다. 사로잡힘의 눈, 로미오의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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