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포크 역사] 왕 Essay
목록으로페이지 정보
- 작성자
- 지혜의숲
- 작성일
- 23-04-29 16:52
본문
초등 6학년 아이가 에포크 역사 왕 수업 뒤 쓴 에세이입니다.
조선의 시간과 우리의 시간. 우리를 가장 두렵게 하는 것, 우리를 가장 아쉽게 하고 한편으로는 기쁘게 하는 것, 그것은 바로 시간이다. 시간은 21세기 현대인들의 삶 속에서 여러 가지 일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이 시간은 어느 날 갑자기 생겨난 것이 아니다. 시간은 바로 조선의 4대 왕인 세종이 만든 것이다. 왜 그는 시간을 창조하게 되었던 걸까?
조선의 4대 왕이 된 세종은 고민이 있었다. 어떻게 하면 망한 고려처럼 되지 않을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왕권이 자주 바뀌지 않고 왕권이 강화되고 인정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었다. 왜 그는 그런 고민을 하고 있었을까? 사실 조선이란 나라는 명나라의 눈치를 보면서 탄생한 나라였다. 그러다 보니 세종은 명나라에서 벗어나는 것을 바랐다. 그래서 세종은 명나라에서 벗어날 방법을 찾게 되었다.
그가 생각한 첫 번째 방법은 조선만의 달력을 만드는 것이다. 조선은 농사가 잘 안되었다. 세종은 이 문제를 시간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농사를 짓는 것은 일주일에 풍년이 들 수도 흉년이 들 수도 있는 아주 까다로운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이 우리나라와는 시간이 다르게 흘러가는 명나라의 달력으로 농사를 지으니까, 당연히 농사가 잘 안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세종은 우리만의 달력을 만들려고 결심했다. 그는 달력을 만들기 위해 하늘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하늘에 떠 있는 별자리를 관찰하고 그것이 계절과 달에 따라 다르다는 사실을 알고서는 1년을 파악하게 되었고, 그러다 보니 한 달을 알게 되었다. 시간을 알게 되었다는 것, 하루가 몇 시간인지 알게 되었다는 것은 사람들의 생각과 그동안의 삶을 바꾸게 된다. 시간을 알기 전에 사람들은 계획하지 못했다. 아마 자기 마음대로 일어나고 잤을 것이다. 그러나 시간을 알면 어떻게 될까? 당연히 농사 시기를 더 정확하게 알게 되어서 풍년이 드는 마을이 많아질 것이고, 언제 일어날지, 언제 일할지, 언제 잘지를 생각하고 실천하게 된다. 한마디로 ‘어떤 하루를 보낼지 계획하게 하는 것’이다. 하루를 계획하게 되면, 사람들은 삶의 주인이 될 수 있다. 세종대왕은 조선의 백성들에게 삶의 주인이 될 수 있게 하였다.
그럼 그가 21세기 우리에게 주는 선물은 무엇일까? 그전에 만약 시간이 없다면 우리가 어떻게 살고 있을지를 상상해보자 어느 날 선생님이 “아침에 학교로 오세요.”라고 말했다고 하자,
그럼 어느 학생은 해가 뜨자마자 바로 학교에 올 것이고, 어느 학생은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나서 느긋하게 학교에 올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일찍 일어나 학교에 간 친구는 다른 친구들을 기다리는데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될 것이고, 늦게 학교에 간 친구는 빨리 학교에 간 친구보다 수업을 더 못해 늦은 시간까지 학교에 있어야 할지도 모른다. 한마디로 시간의 기준이 서로서로 다르게 되면, 예측이 불가능한 삶이 되고 자신의 삶을 계획할 수 없게 된다.
여기까지 들으면 우리는 한 가지 의문이 생기게 된다. 그러면 왜 우리는 시간에 쫓기고 시간을 그렇게 두려워하게 되었을까? 그것은 시간이 정말 공평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생각해 봐야 한다. 나는 내가 계획한 대로 하루를 보냈나? 좋아하는 휴대폰을 붙잡고 할 일을 애써 외면했던 것은 아닌가? 그러면서 항상 시간만 가혹하다고 시간 탓을 했던 것은 아닌가? 시간은 시간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에게만 주인이 될 수 있도록 허락한다. 그렇지 않은 사람을 시간은 자신의 노예로 만들어버린다. 그게 우리가 시간과 함께 한 편의 공포영화처럼 술래잡기하는 까닭이다. 그럼 우리는 결정을 해야 한다.
나는 시간의 주인이 되어야 할까, 노예가 되어야 할까?
지혜의숲 눈으로 바라보기
동양의 전통시대를 주도해온 유교 지식인들은 왕권의 발생과 그 정당성을 덕에서 찾았다. 유교 지식인들은 도끼문양으로서 왕권의 강제력을 상징하면서도 도낏자루가 없는 문양을 내세웠다. 도낏자루가 없는 도끼란 사실 무용지물과 같았다. 사용할 수 없는 도끼를 내세우는 유교 지식인들의 의도는 바로 강제력에 의한 복종보다는 자발적인 복종을 끌어내려는 데 있었다. 유교 지식인들에 의하면 최초의 왕은 야만상태의 인류를 문명 상태로 탈바꿈시킨 성인(聖人)이었다.
유교 지식인들은 왕이 없는 인간사회를 혼란과 폭력이 난무하는 야만상태로 보았다. 즉, 문명이 결여된 상태에 지나지 않았다. 인류가 문명 상태로 진입한 이후에도 인간사회의 질서와 문명을 담보하는 존재로서 왕이 필요했다. 왕의 존재 이유를 설명해주는 유교적 이론의 핵심은 바로 여기에 있었다.
왕은 인간사회의 질서와 문명을 담보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인류의 무질서와 야만상태는 현재 왕의 존재 이유를 부정함과 동시에 새로운 왕의 탄생을 요청하는 징후가 된다. 인간사회가 극도로 무질서해진다면 그것은 현재 왕이 자신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재의 왕은 인간사회의 질서와 문명을 보호하고 발전시키기 위해서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한다.
하늘과 합치하는 왕은 신성한 존재였다. 하늘의 본질은 생명을 사랑하는 데 있다. 생명 중에 가장 고귀한 인간을 사랑하는 하늘은 왕을 두어 인간의 생명을 기르고 있는 것이다. 인간사회가 질서와 문명 속에 있을 때 인간의 생명현상은 최고도로 발현될 수 있다. 과거 동양의 유학자들이 왕의 존재 이유를 설명하던 근거는 이것이었다.
왕은 행정권, 입법권, 사법권 등 세속적 권력을 모두 장악하고 있는 절대 권력자였다. 이러한 세 가지 권력은 요즘과 같은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각각 분리시킨다. 행정권을 가진 사람은 대통령, 입법권을 가진 조직은 국회, 사법권을 가진 조직은 법원이다. 이렇게 세 개로 나누어진 권력은 모두 국민에 의해 선출되기 때문에 진정한 권력의 시작은 국민에게서 나온다. 따라서 민주주의 체제에서 왕은 다름 아닌 국민, 우리인 것이다.
- 이전글[時 에세이] 흐르는 강물처럼 23.05.06
- 다음글[時 에세이] Ah, Not to Be Cut Off 23.04.21
댓글 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