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렛잇비 통합] 나비를 잡는 아버지 Ess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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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 지혜의숲
- 작성일
- 23-07-29 1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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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등 아이가 렛잇비 통합 단계 나비를 잡는 아버지 수업 후 쓴 에세이입니다. 나비가 일으키는 날갯짓 나비의 날갯짓은 아름답다. 파리나 모기의 날갯짓은 아름답지 않다. 왜 그럴까. 왜 나비의 날갯짓만 아름다운 것일까. 나비도 여느 곤충과 다름없다. 다른 곤충과 같이 다리가 6개고, 몸은 머리, 가슴, 배로 나누어져 있고, 생존을 위해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그러나 나비가, 나비의 날갯짓이 아름다운 이유는 나비만이 흉내 낼 수 있는 느낌이 있기 때문이다. 파리가 나비같이 유유히 난다고 해서 나비가 되는 것은 아니다. 저 사람을 따라 한다고 해서 내가 저 사람이 될 수 없는 것 같이, 나비도 고유한 존재이다. 나비가 일으키는 날갯짓은 나비가 해서 아름다운 것이다. 나비가 일으키는 날갯짓은 아름답다. 하지만 그 날갯짓으로 인해 한 나라의 날씨가 바뀌어 버린다. 사실 말도 안 되는 소리다. 그 작은 영향이 날씨라는 큰 영향을 바꾸어 버린다는 것이. 하지만 사소한 영향으로 아주 중요한 일을 망쳐버릴 수도 있고, 사소한 사건으로 아주 큰 일을 성공으로 이끌 수 있다. 이것을 우리는 ‘나비효과’라고 칭한다. 효과 앞에 나비가 붙었다? 그만큼 나비는 중요한 것을 일컫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나비는 우리에게 어떠한 의미로 다가올까? 현덕의 ‘나비를 잡는 아버지’라는 단편소설에서 나비는 이룰 수 없는 바우의 꿈을 상징한다.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하는 바우, 그러나 바라보기만 해야 하는, 닿을 수 없는, 나비는 바우의 희망이자 환상이다. 반대로 경환이에게 나비는 기회만 있으면 가질 수 있는, 너무나도 쉬운 존재이다. 경환이에게 나비는 그저 표본용이었다. 마름의 아들이었던 경환, 소작농의 아들이었던 바우, 두 친구의 싸움으로 인해 바우의 아버지는 아들을 대신해 나비를 잡으려 했다. 바우의 아버지에게 나비는 아들에 대한 미안함과 사랑이었다. 바우 아버지에게 나비는 사랑으로 다가왔다. 나는 나비를 부러워한다. 아마 현대인 중 대부분은 나비를 부러워하지 않을까 싶다. 현대인들에겐 없는 것이 나비에겐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여유로움’이라는 것이다. 4차 산업혁명을 넘어서, 초시대가 되어가는 요즘 사람들은 너무 바쁘게 살아간다. 바쁘게 살아가다 보니 정작 자기 자신도 챙기지 못한다는 것이다. 현대인들에게 여유로움이란 사치다. 이런 시대에서 여유로움 따위 신경 쓰지 못한다. 그러나 나비는 한 명의 선비같이 너무 여유롭다. 그렇게 여유롭게 살면서 할 일은 다 한다. 얼마나 부러운 인생인가! 이처럼 나비는 많은 의미가 있다. 나비의 여유로우며 힘찬, 또 아름다운 날갯짓이 우리에겐 이렇게 많은 시각을 준다. 나비는 인간에게 참 부러운 존재다. 나비의 인생을 부러워하다니. 몇몇 사람들에겐 공감이 안 될 수 있다. 그러나 그들도 이런 삶을 원하지 않을까. 나비의 날갯짓은 아름답다. 마치 나비의 인생처럼 말이다. 내 안의 나비를 깨워야 할 때 바다와 나비/ 김기림 아무도 그에게 수심(水深)을 일러 준 일이 없기에 흰 나비는 도무지 바다가 무섭지 않다. 청(靑)무우밭인가 해서 내려갔다가는 어린 날개가 물결에 절어서 공주(公主)처럼 지쳐서 돌아온다. 삼월(三月)달 바다가 꽃이 피지 않아서 서글픈 나비 허리에 새파란 초생달이 시리다. <나비를 잡는 아버지>는 조선 말 일제 강점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일본인들을 통해 신문물이 유입되며 ‘개화기’라고도 불린 시기였지만, 그 이면에 가난한 서민들의 삶은 일제의 탄압과 소작농 마름의 횡포까지 더해져 하루하루 척박했습니다. 작품의 주인공 바우는 소작농의 아들로 태어났다는 이유로 자신의 꿈을 포기해야 합니다. 바우의 아버지 또한 가난한 소작농이라는 이유로 땅 주인에게 부당한 대우를 받고, 부잣집 아이에게 무시당하는 아들을 도와주지 못합니다. 이 가난한 부자(父子) 사이에 나비가 있습니다. 나비는 바우가 바라만 보아야 하는 꿈이고, 그 꿈을 이루도록 도와줄 수 없는 아버지의 미안한 마음입니다. 처음에는 나비가 갈등을 일으키는 것 같았으나 결국 두 사람을 화해, 이해시키는 것도 나비이지요. 나비에 서려 있는 소작농 가족의 한을 들여다본 후, 새로운 시선으로 다른 작품 속에 등장하는 나비들을 바라봅니다. 나비의 자유로운 날갯짓 속에서 꿈을 갈망한 사람들의 마음을 읽고, 자신의 꿈과 욕망을 마주 볼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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