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에세이] 요약 > 지숲 Essay

詩 에세이 요약 이갑수 모든 일은 시작하는 순간 반으로 요약된다 배부름은 첫술에 요약되어 있다 어떤 술도 그 맛은 첫잔과 마주한 사람이 나누어 좌우한다 귀뚜라미는 소리로서 그 존재를 간단히 요약한다 평행한 햇살을 요약하여 업은 입사귀 하나 아래로 처지고 있다 방향은 가늘게 요약되어 동쪽은 오로지 동쪽만을 묵묵히 담당한다 요란한 것들을 집합시켜 보면 사소한 것 하나로 요약할 수 있다 물질은 한 분자에 성질을 전부 요약하여 담는다 한 방울 바닷물이 바다 전체를 요약하고 있다 서해는 서해를 찾아드는 모든 강의 이름을 요약한다 목숨은 요약되어 한 호흡과 호흡 사이에 있다 파란만장한 생애는 굵고 검은 활자로 요약되어 부음란에 하루 머무른다 하루살이는 일생을 요약하여 하루에 다 산다 너는 모든 남을 요약하여 내게로 왔다 명시 함께 보기 삶은 단 하루, 한순간에 요약되어 있는 것은 아닌지. 그 사람의 모든 것은 그 사람의 하나의 행위에 요약되어 있는지. 그렇다면 반대로 어떤 현상, 어떤 순간에 이 세상의 모든 것은 함께 담겨서 요약되어 있다면, 요약되지 못한 것들은 어디로 가는 것인지……. 만약 나에게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이 요약되어 있다면 나의 삶, 나의 존재의 무게는 지금보다 훨씬 진지해질 수 있는 것은 아닌지. 만약 이 시를 교훈적으로 읽는다면 모든 타자들, 모든 순간에 충실하기를 가르치고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그 반대일 수도 있다. 만약 ‘요약’되는 것이 본질적인 것이라면, 삶은 얼마나 멋없는 것인가? 요약되지 않는 것들 때문에 나는 나만의 독특함을 가질 수 있고, 아주 사소한 것들, 도저히 요약되기 힘들 정도로 의미 없다고 여겨지는 것들 때문에 모든 존재하는 것들은 지금 존재하는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요약하는 능력이야말로, 요약하려는 본능이야말로, 요약한 것을 찾으려고 하는 시선이야말로 차이점보다는 동일성, 같은 점을 찾으려고 하는 나약함의 본능일지도 모른다. 나는 왜 나의 삶을 요약하려고 하는가? 나는 왜 나의 삶의 중심점을 항상 확인하려고 하는가? 그것이 나의 삶을 증명하기 때문인가? 아니면 그것은 나의 욕망인가? 과연 그것은 나를 즐겁게 하는 것인가? 사고력 교육에서 추론은 요약되어 진 것을 풀어헤치는 능력이다. 그것은 하나를 통해서 다른 모든 것들을 간파하고, 하나를 통해서 다른 모든 것들을 통제하고자 하는 사고의 의지이다. 이 추론능력으로 무엇이 얻어지는가? 그것은 인간 중심의 ‘자유’이다. 그런데 이 자유는 인간이 우위에 서고자 하는 ‘자유’이다. 왜냐하면, 이 ‘자유’ 의지는 인간에게 다가오는 개별적인 현상이 장악되지 않거나 인간 마음대로 조절할 수 없는 상황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의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에게 다가오는 모든 현상, 모든 존재는 인간에 의해, 인간이 필요로 한 부분만 간파당하고 나머지 부분은 처절히 버려지거나 제거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가장 바람직한 ‘추론의 자유’는 어떻게 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