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숲스토리 시즌1 Vol.4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코코아 > 교육 Insight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코코아 “선생님 예현이 코코아 쏟았어요!” 지숲의 쉬는 시간 저학년 교실에서 터져 나오는 단말마의 목소리. 이 때를 위해 준비하고 있었노라. 교실 한 켠에 대기 중이던 물티슈와 화장지 특공대가 코코아를 향해 돌진하고 아이들은 신속하게 놀란 눈 토끼처럼 뜨고 있는 친구를 구출해 옆자리로 대피시킨다. “괜찮아?” 가장 먼저 묻는 건 친구의 안부다. “응! 괜찮아.” 바지 옆단 조금 젖은 게 무에 대수랴. 안타까운 건 연필 꾹꾹 눌러 적은 소중한 에세이 공책에 번지는 갈!색! 반점. “어떡해.” 아이들의 시선이 공책에 머물러 한동안 떠날 줄 모른다. 마치 저희들 공책에 생채기라도 난 것처럼. 지숲의 차 문화는 “괜찮아” 문화다. “괜찮아?” “응, 괜찮아.” 관심과 관용의 문화다. 어서 오시오! 지혜의숲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코로나가 기승을 부리던 2020년, 지숲을 수료한 새내기 대학생과 재학 중인 대학생 선배 스무 명 남짓이 세미나 공간 사단법인 ‘파랑’에 모였다. 여느 해라면 각 지역의 기숙사와 교정에서 자유와 일탈의 여유를 누리고 있으련만, 학교가 아닌 집에서 하루 세끼는 미안하고 죄송스러워 두 끼만 먹노라는 깜찍한 농을 던지며 아이들은 여전히 발랄하고 싱그러웠다. ‘지숲을 수료한 아이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라는 우리의 궁금함은 ‘그러면 이참에 한번 모여 볼까?’로 옮겨갔고 이름하야 홈커밍데이가 조직되었다. 그렇게 만난 아이들이 자발적으로 조직한 인문학 공부 모임이 ‘파랑나비’다. 파랑나비들은 취업이나 취직을 위한 공부가 아닌 나를 세우고 나를 의미 짓는 ‘인문학 공부’를 진지하게 해보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텍스트로 과거 지숲에서 다뤘던 텍스트를 다시 꼽았다. “아니 왜에?” “고전은 읽을 때마다 양파껍질처럼 겹겹이 튀어나오는 새로운 의미가 있다면서요. 그동안 우리가 얼마나 컸는지 고전을 통해 점검해보고 싶지 않으시나용?” “안 읽어도 되는 부담을 줄이고 싶어서는 아니렷다.” “에이, 아시면서! 근데 선생님, 쉬는 시간인데 코코아 안줘요?” 엊그제 헤어졌다 만난 듯 낯설음이라곤 1도 없는 무방비함을 기꺼워하며 차 주문을 받는다. 자크 데리다는 환대란 ‘주인 자신의 기쁨을 무궁무진 반사시키는 행위’라고 말한다. 지숲에는 ‘환대’를 표현하기 위한 지숲만의 방식이 있다. 이름 하여 티타임! 발표수업을 마친 후 에세이를 낭독한 작가이며 독자들이기도 한 팀원의 노고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대접하는 당분보충 원기회복의 시간, 코코아와 아이스티 마시기. 여름에는 달콤새콤 시원한 아이스티를 겨울에는 따뜻한 코코아를 옹기종기 둘러앉아 마신다. 차는 교사가 일괄적으로 쟁반에 담아오기도 하고 아이들이 데스크에 마련된 자판기에서 줄 지어 뽑은 후 교실로 가져와 마시기도 한다. 발표를 하며 달뜬 마음을 가라앉히고 2부 초점 수업을 맞이할 여유를 찾는 시간. 다 자라 성인이 된 후에도 지숲의 아이들이 가장 첫 번째 떠올린 기억은 지숲의 ‘차’였다. 우물가 버드나무 잎 따서, 지나가던 나그네 한 사발 시원한 물 체하지 말고 드시라 권했다던 옛이야기부터 아침 출근길 “커피 한 잔 어때?” 테이크아웃 포장해 들고 오는 수고를 마다않는 동료까지, 차를 권하고 받는 행위는 인간만이 누리는 휴식의 제의이며 마음을 나누는 문화적 행위다. 조금씩 홀짝 홀짝 나누어 마시는 아이, ‘원샷!’하는 아이 모습은 제각각이나 한 공간에서 함께 차를 나누는 공동의 문화적 체험을 통해 아이들은 인간을 대하는 태도, 관계의 애티튜드를 익혀간다. 그래서일까? 책을 읽는 아이, 멀리 앉은 친구에게 말을 거는 아이, 복도를 어슬렁거리는 아이, 지숲의 쉬는 시간은 무질서한 듯 보여도 안정감이 있다. 개성과 성향이 다르기에 당연한 갈등도 일어나지만 결국 스스로 제자리를 찾아가는 건 차 문화의 공이 크다. 친하되 서로 존중할 것. 어른과 아이가 한데 모여 차를 마시며 담소하는 문화는 지숲이 일관되게 고집하는 쉼의 문화다. 그래서 우리는 상상한다. 가정 마다 코코아와 커피 한 잔을 두고 아빠와 엄마 아이가 모여 조곤조곤, 묻고 답하는 차 문화가 정착된다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