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숲스토리 시즌2 Vol.25 우뚝 일어서자 손이 생겼다. 상상의 힘으로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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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 지혜의숲
- 작성일
- 23-09-26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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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뚝 일어서자 손이 생겼다. 상상의 힘으로 만난다. 앗, 그런데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아이들이 방금 전까지 앞발 삼았던 것은 무엇이던가? 바로 손이다. 우뚝 일어서자 손이 생겼다. 세상에나, 이 손이 이제 무엇을 하게 될까? ”손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도구를 잡아요.“ 그렇다. 움켜쥐기이다. 두발걷기를 하고 허리를 펴고 우뚝 섰건만 아직도 닿지 않는 높은 나무의 열매들, 눈에 버젓이 보이는데도 닿을 듯 닿지 않는 그 열매들에 대한 슬픔과 간절함으로 움켜쥔 것이 있었으니 나뭇가지이거나 작은 돌멩이였을 것이다. 갓난아기가 헛손질을 거듭하며 장난감을 쥐듯이, 허공을 가로질러 드디어 무엇인가를 잡아냈을 것이다. 인류의 역사에 ‘도구’가 출현한 위대한 순간을 우리는 상상의 힘으로 만난다. 드디어 석기시대의 문이 열렸다. 두발걷기가 가져온 인류의 가장 큰 변화는 바로 도구의 사용이다. 그것은 결정적인 사건이다. 지금 아이들이 둥글게 모여 앉아 있는 책상 위에 흩어져 있는 이 물건들이 무엇인가? 수많은 도구들이다. 모두 도구들을 사용해보자. 연필을 잡고 쓰는 아이, 지우개로 지우는 아이, 책을 펼치는 아이, 공책으로 옆 친구의 등을 간지럽히는 아이, 필통을 손으로 튕기는 아이, 그 와중에 스마트폰을 검색하고 있는 아이, 손과 도구가 만나 이루어내는 이 신비로운 광경들을 나는 내버려두고 구경한다. 앞발의 해방, 손의 사용은 혁명의 전주곡이다. 뭘 움켜쥐는 데서 끝나지 않을 테니까. 차근차근 따져보자. 지금 손가락 사이에 연필을 끼고 자유자재로 글을 쓰고 있는 너희들의 능력은 얼마나 위대한 능력인지 알겠는가? 도구를 잡고 다듬어가면서 손을 사용하는 기술은 더욱 정교해졌다. 손이 할 일이 많아지면 그 손을 조종하는 뇌도 점점 복잡해진다. 넓어진 시야에 들어온 보다 많은 정보들을 처리하고 손의 신경과 근육을 활발하게 움직이는 과정에서 뇌의 용량은 비약적으로 커지게 되었다. 같은 포유류에 속하는 여러 동물들을 제치고 뇌 용량이 가장 큰 동물로 등극하게 된다. 그리고 현생 인류의 조상인 ‘호모 사피엔스’가 지구에 드디어 등장한다. 처음으로 두발걷기를 했던 인류로 추정되는 오스트랄로피테쿠스의 뇌 용량은 고작 약 500CC 정도였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와 호모 사피엔스 사이에는 우리가 상상하기 힘든 만큼의 긴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그 긴 시간 동안 인류의 조상들은 휘청거리는 다리에 힘을 기르고, 굽어진 허리를 곧게 펴고, 손의 크기와 기능을 진화시키며 살아남았다. 교과서에 사진으로 남아있는 수많은 돌 도구들은 몇백 만년에 거친 엄청난 사건들의 압축파일이다. ”선생님, 그런데 왜 인간만 두발걷기를 선택했을까요? 다른 동물들은 두발걷기의 좋은 점을 몰랐을까요?“ 예리한 질문을 던지는 신형, ”아니거든? 침팬지나 오랑우탄도 두발로 걷거든?“ 거기에 딴지를 거는 민우. 문득 헷갈린다. 침팬지도 두발걷기인가? ”두 발로 걷는 자는 모두 우리의 적이다!“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에 등장하는 동물들의 7계명 중 첫 계명이다. 동물들이 발견한 인간의 가장 고유한 특징은 아무래도 ‘두 발로 걷는다는 것’인 모양이다. 네발로 걷는 동물들에게 인간은 적이다. 그들 중 아무도 가지지 못한 비범함과 독특함을 성취한 인간은 부러움의 적이다. 그들은 마지막까지 두발걷기를 선택하지 않았다. 신형이의 질문처럼 그들은 왜 두발걷기를 선택하지 않았을까? ”두발걷기와 네발걷기 중 어떤 것이 더 편할까?“ 네발로 낑낑대며 걸었던 체험을 마친 아이들은 당연히 두발걷기가 편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처음부터 두발걷기가 편했을까? 이 아이들은 자기들도 처음엔 네발로 기었다는 걸 기억하지 못한다. 네발로 기다가 처음으로 두발로 걸음마를 시작했을 때의 고난을 그러니 모르겠지. 비틀비틀, 아장아장, 그러다 ‘쿵’하고 넘어지던 그 시절을. 아무래도 두발걷기의 대차대조표가 필요한 순간인 것 같다. 네발걷기의 포기, 인류는 어떤 대가를 지불해야 했는가? “혹시 귀여운 강아지의 앞발을 들어 올려 본 적이 있니?” 아이들이 키득거린다. “찌찌가 다 보여요.”, “흔들흔들 춤을 추는 것 같아요.” 그렇겠지. 너희들의 장난에 그 강아지는 쩔쩔매며 힘들어했겠지. 다시 두발로 우뚝 섰던 그 날로 돌아 가보자. 몸을 움직인다는 것은 ‘중력’과의 싸움이다. 땅이 끌어당기는 힘을 이겨내야 몸을 땅으로부터 일으킬 수 있다. 한 발짝이라도 몸을 이동시키기 위해서는 더 치열하게 싸워야 한다. 천근만근 같은 힘을 이겨내며 걸어야 한다. 대부분의 동물들이 네발인 이유는 바로 이것 때문이다. 네발로 중력 즉, 자신의 무게를 분산시켜 조금이라도 쉽게 몸을 지탱시키고 이동하기 위해서이다. 그런데 네발 걷기를 포기하고 두발로 우뚝 서버렸으니 어땠을까? 아기나 강아지가 힘들어하는 걸 상상해보면 알 수 있다. 우선 두발걷기는 엄청난 희생을 감수해야 하는 일이다. 가여운 발, 이제 온몸의 무게를 맨 아래쪽에 있는 발이 지탱해야 한다. 당연히 속도에서도 불리하다. 포유류 중 디스크라는 질병을 앓는 동물은 오직 인간뿐이란다. 그만큼 두 발로 몸을 지탱하는 것은 허리와 목에 엄청난 무리를 가져온다. 출산을 담당하는 여성들은 더욱 힘겨워졌다. 두발걷기로 골반이 두꺼워지고 산도가 좁아져 아이 낳기에 어려움이 생겼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이 문제를 조기출산으로 해결해야만 한다. 인간은 포유류 중 가장 미성숙한 상태로 10개월 만에 태어난다. 두발걷기의 상태에서 더 오랫동안 아이를 뱃속에 품고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아기는 인간이 아직 아니네요?” 우스갯소리가 나온다. 따지고 보면 어찌 온전한 인간이라고 할 수 있으리. 손으로는 겨우 딸랑이나 쥘 뿐이고, 말도 할 수 없고, 생각도 할 수 없는데. 그것이 다 아직 걸음마를 못 떼었기 때문인 것을. 갑자기 스스로에 대한 자랑스러움이 넘쳐나지? 한 가지 더, 몸을 세우자 드러난 중요한 신체 부위는 어떻게 할 것인가? “옷이요!” 그렇구나. 우리의 개성을 마음껏 뽐내게 하는 옷이 이렇게 탄생했구나. 그럼에도 인간은 두발걷기를 선택했다. 실로 엄청난 투자이다. 몸의 수많은 고난을 기꺼이, 몇백 만년이라는 시간을 집요하게 투자하며 그들이 선택한 두발걷기는 어떤 이익을 남겼을까? 그들의 포기와 선택은 가치 있는 것이었을까? 답은 역사의 시작이다. 호모사피엔스의 승리이다. 도구와 문명의 창조, 언어와 사유의 탄생, 인간과 인간셰계의 출현, 두발걷기가 지구의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다. 인간만이 서로 얼굴을 마주보며 따뜻한 포옹을 나눈다. 나란히 손을 잡고 걷는다. 뜨겁게 악수를 나눈다. 마주보며 이야기를 하고, 손을 잡는 이 아름다운 만남을 다른 동물들은 상상할 수 있을까? 두발걷기가 인류에게 준 최고의 축복은 이 뜨거운 마주보기가 아닐까? 세 발로 기우뚱거리며 걷고 하나의 발만 손이 되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한 발로 통통거리며 걷고 세 개의 발이 모두 손이 되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얼마나 우스꽝스러웠을까? 두발로 걷고 두발이 손이 된 것은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참으로 지혜로운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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