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숲스토리 시즌1 Vol.1 발표를 먼저 하는 이상한 수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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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 지혜의숲
- 작성일
- 22-08-17 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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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표를 먼저 하는 이상한 수업 : 지숲 수업모형 가위는 보자기를 자를 수 있지만 바위를 가르지는 못한다. 바위는 가위를 부술 수 있으나 보자기에는 싸인다. 보자기는 가위를 자를 수 있으나…가위바위보는 선과 악, 옳고 그름의 시선으로 세계를 바라보려는 이분법의 논리를 깬다. 가위바위보는 강자안의 약한 고리, 약자 안의 강한 고리가 서로 맞물리는 지점들을 돌파해가면서 배타성을 지우고 공존과 상호연결의 장(場)을 연다. 가위바위보는 남녀와 노소를 가리지 않는다. 수줍다고 팔 머뭇거리지 않으며 두려워 손 감추지 않는다. 지혜의숲의 아이들이 사활을 걸고 가위바위보를 한다. “안 내면 진다 가위바위보!” “가위바위보!” 쉽게 승패가 나지 않을수록 목소리에는 반드시 이겨서 내 발표순서는 내심 작정한대로 정하고야 말겠다는 결기가 가득하고 바위를 낸 패와 가위를 낸 패로 편이 갈리면 “오!”하는 환호와 “아!”하는 탄식이 뒤섞여 적변대전을 방불케 하는 분위기 연출, 그러나 이제 시작이다. 일등과 꼴등을 놓고 다시 치열한 공방전. 가슴이 콩닥인다. 순간이 영원 같다. 이게 뭐라고, 사춘기 접어들어 선택적 함구증에 걸린 열세 살 근엄한 유찬이도 목숨 걸고 “가위바위보!” 가위바위보로 여는 이상한 수업 지혜의숲 수업의 시작을 알리는 진풍경이다. 지혜의숲에서 아이들이 가장 기다리는 시간이자 두렵기도 한 시간. 그러나 일종의 게임이자 놀이로써 즐기기에 발표 순서를 정하고 나면 몸과 마음의 긴장이 풀리고 자못 유쾌해지는 시간! 지혜의숲의 수업은 아이들이 가위바위보를 통해 이긴 순서대로 각자 발표 순서를 정하는 희비교차 쌍방과열의 시간으로 1부 시작을 연다. 가위바위보를 해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안다. 졌다고 해서 열패감에 시달리지 않으며 이겼다고 해서 다음 주도 이런 천운이 계속되지 않으리라는 것을. 가위바위보를 심리전으로 파악하는 혹자도 있으나 심리전이라고 해봤자 “남자는 주먹이쥐~”하는 단순 애교스러운 대사쯤 가볍게 무시해도 좋을 일이라는 것을. 가위바위보를 통해 수업 초기의 서먹함은 어느새 물러가고 전부터 알던 사이처럼 떠들고 웃으며 서서히 제자리를 찾아간다는 것을. 단 한 번의 가위바위보로 심리적 거리는 좁혀지고 친밀함이 봄 새순 돋듯 마악 자라났다는 것을. 놀이에는 이렇듯 경계심을 무장해제 시키는 놀라운 효과가 있다. “발표를 시작하겠습니다. 준비되셨나요?” 팀 구성원 여덟 명 중 가위바위보 일등을 차지한 아이는 자신의 발표 순서를 어디에 위치 지을까? 당연히 1등이라고 생각한다면 감정을 관장하는 인간의 번연계를 무시하거나 잘못 이해한 것이다. 지피지기 백전불태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번 싸워도 위태로울 것이 없으나) 부지피이지기 일승일부(적을 모르고 나를 알면 승과 패를 주고받을 것이며) 부지피부지기 매전필태(적을 모르는 상황에서 나조차도 모르면 반드시 위태롭다.) 손자병법 ‘모공편’을 몰라도 아이들은 자신보다 뛰어난 문장 표현력을 구사했을 모종의 적(?)에 대한 정보가 모아질 때까지 섣불리 나서지 않는다. 그리하여 발표수업 초기에는 중간 이하 즈음에 안전하게 착지, 상황을 관망한다. 눈물겹게 안타까운 건 가위바위보에서 진 아이다. 당연히 발표 1등이다! 하늘의 도우심으로, 1등으로 나서게 된 아이가 내심 에세이에 자신이 있다면 ‘내가 아니어서 괜찮아.’ ‘저 아이 좀 안됐다.’는 감정이 한순간에 부러움과 부끄러움과 ‘왜 하필 저 애 뒤 차례일까’라는 걱정으로 바뀔 테지만 그럴 일은 거의 없다. 살아온 경험과 사유의 결만큼 아이들의 글은 다르기 때문이다. 친구의 글을 듣고 ‘멋지다’고 느끼는 지점들도 제각각 다르다. 스스로 결정한 순서에 따라 앞으로 나와서 에세이를 발표하는 동안 자리에 앉은 친구들은 지혜의 숲 노트에 에세이 선물을 준비해온 친구를 향한 칭찬 코멘트를 적는다. 발표가 끝나면 손을 들어 자신이 적은 코멘트를 들려준다. 한 줄도 너무 길다. 종종 패기 가득한 나머지 “칭찬할 게 없어요!!” 당당하게 외치는 아이가 있다면 상냥하게 들려준다. 한 줄도 칭찬하기엔 아주 긴 글이란다. 듣거나 읽는 이가 찾지 못했을 뿐 칭찬의 요소를 숨기고 있지 않은 글은 없다. 홍시여, 이 사실을 잊지 말게 너도 젊었을 때는 무척 떫었다는 걸. / 소세키 달면 뱉고 쓰면 삼킨다 / 청춘, 김상희 연필이 부러지지 않는다 / 공부, 정상혁 한 줄 문장은 내게로 와서 감정을, 사건과 경험과 생각을 퍼 올리는 매개로 작동한다. 따라서 발표수업의 최대 수혜자는 발표하는 사람이 아닌 앉아서 듣는 사람이다. ‘연필이 부러지지 않는다’는 연필, 부러짐이라는 두 개의 초점이 되는 낱말을 갖는다. ‘연필’에서 연상하는 또 다른 상념은 무엇인가? 부러짐이나 부러지지 않음에서 연상되는 또 다른 언어는 무엇인가? 이를 적어 말로 전하는 일이 칭찬 피드백이다. 칭찬 코멘트는 내가 ‘너’를 귀 기울여 듣고 있다는 행위에서 시작되고 너로 인해 내가 배웠음을 발견하는 성찰로 마무리된다. 성찰은 질문으로 드러날 수도, 상상적이거나 비판적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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